JLPT 공부 1년 후기
in Lifelog
대략 10년 전, 러키스타가 방영되고 동방풍신록이 신작이던 시절 저는 덕질의 세계에 입문했었습니다. 그 당시에는 하루에 10편씩 거의 매일같이 애니를 보고 분기 애니도 꼬박꼬박 챙겨 봤었는데… 덕질 3년차에 혼자서 아키바에 가서 동인 음반 매장에서 점원과 수다를 떨었던 경험이 있으니, 일본어로 일상 회화가 가능한 정도까지는 그 때쯤 도달했던 것 같습니다.
하지만 그 이후로는 일본어 실력이 늘었다고 체감했던 때가 없었습니다. 관심사가 애니에서 비주얼 노벨로 넘어가고, 번역기를 붙여서라도 열심히 한자를 접했지만 간단한 한자도 쓰기 힘들었습니다. 회화가 가능하지만 쓰기와 읽기가 안 되는 상태가 약 5년간 지속되었고, 그 5년이 지나도 한자는 고사하고 히라가나조차도 곧바로 읽히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. 비주얼 노벨 계속 하다 보면 언젠가 독해 실력은 늘겠지~ 싶었지만 결국 한자 실력은 전혀 늘지 않았습니다.
그리고 시간이 지나 입대할 나이가 되었고 저는 군대에서의 목표를 JLPT 1급 취득으로 잡았습니다. 번역기를 떼고 비주얼 노벨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고(개인적으로 ITH+EGGHEAD는 정말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네요) 어차피 저는 몇십 년이고 덕질을 계속 할 것 같으니 일본어를 각 잡고 배워 두면 인생 전반에 걸쳐서 분명 쓸모가 있겠다 싶었습니다. 스펙에 한 줄 더 추가할 수 있는 것은 덤이고요.
SW개발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후 지금까지 약 1년 2개월이 지났는데, 매일 하루 두세 시간씩은 독서실에서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. 아무것도 할 게 없으니 자연스럽게 독서실만 다니게 된 것도 있고, 전역하면 번역기를 꼭 떼고 싶었던 것도 있어서요. 대학교 때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 안 했었는데 참 덕질은 위대하다 싶었습니다.
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의 독해 실력은 거의 바닥에 가까웠습니다. 그래서 바로 N1으로 들어가면 멘탈이 깨질 것 같아 N2부터 시작했습니다. 책은 옛날옛적 다락원에서 나온 책과 일단기에서 나온 책 두 권을 돌렸습니다. 원래 다락원 책 하나만 두 번 돌리려고 했는데, 아무래도 했던 거 또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(애니도 웬만하면 재탕 못 하기 때문에;) 두 권을 사서 봤습니다. 나중에 생각해 보니 책 한 권만 2회독 해도 큰 차이가 없었을 것 같네요.
JLPT N2 시험 때까지 이 책 두 권에서 나오는 모든 한자를 외우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. 책을 직접 보면 알겠지만 한자 양이 정말 장난 아닙니다. 한 페이지 가득 한자 단어로 차 있는데 며칠 동안 외워도 잘 안 외워집니다. 한자 외우는 데에만 전체 공부하는 데 약 90%의 시간을 썼던 것 같습니다. 1년동안 한자 공부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. 한자 공부 방법은 특별한 거 없이 책에서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그냥 주구장창 쓰면서 외웠는데,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긴 했지만 결국 어떻게든 외워지더라구요.
그렇게 약 8개월간 N2 공부를 했고 올해 7월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했습니다. 독해 부분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어휘와 청해는 만점이었습니다 ^~^! N2 고득점도 좋았지만 더욱 좋았던 것은 이렇게 각 잡고 한자를 공부하니 그 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한자가 서서히 읽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. 몇 년동안 덕질을 해도 늘지 않았던 독해 실력이 단시간 안에 늘어서 상당히 뿌듯했어요. 진정한 덕후의 상징이 청해 만점이라는 썰도 있던데 찐덕후로 증명된 사실도 중요합니다
최근 번역기 없이 한 번 비주얼 노벨을 켜 봤습니다. 읽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정한 속도로 독해가 되긴 했습니다. 몇몇 어려운 한자를 제외하고는 한자도 웬만큼 머리에 들어와서 무리 없이 플레이 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온 것 같네요. 드디어 비주얼 노벨 플레이 할 때 번역기를 완전히 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.
결론은 무라사메쟝 짱 이쁘다는 것입니다.
